목사님, 사랑합니다!

유초등부 아이들이 달려와서 붙잡더니 두 팔 벌려 하트모양을 만들고 “담임목사님,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합니다. 벌써 여러 명의 아이들이 달려와서 ‘하트 뿅뿅’ 날리고 갔습니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 어색하기는 했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비록 시켜서 하는 행동이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나를 사랑한다는데 당연히 행복 만땅입니다. 그래서 나도 사랑으로 안아줬습니다. 달란트 축제를 하는데, 보물찾기를 한 다음 쪽지에 쓰여 있는 지시사항대로 실천하면 달란트를 받는 것이랍니다. 그러니까 자발적인 사랑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가를 바라고 한 의지적 행동입니다. 어찌되었건 상관없습니다. 아이들이 내 앞에까지 와서 보여준 행동과 그 고백은 나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 곧 부모, 형제, 친구, 이웃에게 다가가서 관계를 맺고, 사랑의 표현까지 할 수 있는 아이가 된다면, 그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자기 필요를 채우기 위한 형식적 사랑표현이었지만, 사랑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아이들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면서까지 사랑표현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그게 영적으로 성숙한 삶입니다. 언제나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모습입니까? 자신을

미국에서 온 전화

미국 애틀랜타에서 목회하시는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으로부터 소개받았다고 합니다. 그 교회 성도님의 어머님이 봉선동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데, 심방을 하고 복음을 전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국내에 잠깐 들어오고 싶어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상황변화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그 목사님도, 성도님도 전혀 알지 못하는 분들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이기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요양병원에 찾아갔습니다. 병원에 계시는 어머님뿐만 아니라 광주에 있는 가족들이 모두 믿지 않는 분들이어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기도로 준비하고 심방을 갔습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계시는 어르신에게 미국에 있는 따님이 보낸 목사라고 나를 소개하고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듣는 중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응을 했습니다. 복음을 다 전하고 나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 믿고 천국 가고 싶으시지요? 그러면 고개를 끄덕여보세요!” 그랬더니 고개를 아래위로 움직였습니다. 다 알아들으시고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음날 미국의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상황을 설명해드렸더니 너무 감사해하면서 한국에 들어오면 꼭 인사를 오겠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귀한 딸입니다. 위독하신 어머님에게 그 무엇보다도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당장 귀국하기는 어렵고 어머님은 기다려주지 못하실

꽃 피워내고픈 마음

목양실에 장시간 앉아 있다가 바람 좀 쐴 겸 교회 잔디마당에 나왔습니다. 형형색색의 봄꽃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고 교회 화단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평상시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었는데, 벚꽃, 철쭉, 튤립, 민들레, 팬지, 데이지, 그리고 이름조차 모르는 꽃들까지 대략 23종류의 크고 작은 꽃들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렇게 꽃이 많은지 몰랐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겨우내 얼어붙은 마당과 화단이 황량하게 느껴졌었는데, 어느새 연초록의 새순이 고개를 쑥 내밀고는 하루가 다르게 녹색마당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당을 둘러싼 갖가지 꽃들은 화려한 색깔과 아름다움으로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의 손길을 노래하고 있는 듯합니다. 화초와 꽃나무들이 봄이 오면 영락없이 꽃을 피워내듯이, 나도 역시 꽃을 피워내고 싶습니다. 어쩌다가 한번 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식물들이 다 죽어있는 듯이 지내지만, 하나님은 그것들에게 생명력을 주셨고 정해진 때가 되면 다시 꽃피워 오르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손길이 놀랍다는 것이 실감나는 계절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는 인생의 꽃을 피워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해서 소망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참한 지경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영화 ‘서서평’ 시사회에 초대받아서 오랜만에 영화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된 서서평 선교사의 시신을 수술실로 옮겨가는 것이었습니다. 영양실조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 서서평의 몸은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수술실 밖에 취재를 위해 와있던 동아일보 기자가 던진 혼잣말이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왜 이렇게 산거야?’ 영화 마지막 장면이 뇌리에 새겨졌습니다. 그녀가 떠난 방의 한쪽 벽에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왜 조선 땅에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지, 그녀의 삶을 말해주는 글귀였습니다. 서서평(본명 :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 선교사는 1912년 간호선교사로 낯선 땅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광주의 어머니라고 불릴 정도로 광주와 함께 하셨던 분입니다. 당시에 배우지 못해 무지하고 힘없는 여성들을 모아 이일학교(한일장신대학교 전신)를 시작했고, 조선간호부회(대한간호협회 전신) 창설과 광주 및 제주 여전도회를 조직해서 전국여전도회연합회를 결성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서서평 선교사는 외국인이었지만 무명베옷과 고무신 차림에, 보리밥과 된장국을 먹으면서 완전한 조선 사람으로 살았고, 조선 사람을 위해 살았습니다. 같은 동포들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고아와 걸인,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면서 헐벗고 고통 받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정

가짜뉴스와 순수한 믿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말한 유명한 명제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더욱 확실한 결론이 하나 도출되는데, 그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곧 ‘생각하고 있는 나’입니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나 자신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온 그 유명한 명제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입니다. 믿을 수 없는 말들로 난무한 요즘의 세상을 보면서 갑자기 데카르트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의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뿐만 아니라 인터넷, 언론, 방송 등을 통해 가짜뉴스가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기사가 나오면 ‘진짜일까?’라는 생각이 앞서기도 합니다. 이러다가 사람들이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모두 다 가짜라고 생각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그 외에는 다 불신하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무섭고 불행한 세상입니다. 의심이라고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합리적 의심을 통해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팎에서 이단의 거짓을 분별하고 우리 영혼을 지키는데 있어서 아주 유용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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