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세운 가정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있고, 교회에서도 그 날들을 기념하여 특별주일로 지킬 정도로 가정은 우리 모두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중요하게 여김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가정들이 많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가정의 중심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십자가 조형물을 세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십자가 모양의 귀걸이, 목걸이를 하고 다니거나, 집안에 커다란 십자가를 세워놔도 그것이 장식에 불과하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온 가족이 십자가신앙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세워진 가정은 감사와 찬양이 넘쳐흐릅니다. 십자가 앞에 섰을 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꾸준히 십자가의 주님 앞에 서는 사람은 어떤 환경과 형편에서도 감사와 찬양이 나오게 되는데, 그런 가정은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세워진 가정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용서받은 죄인이기에 누구를 비난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없습니다. 부모, 자녀, 형제가 함께 살아가면서 여전히 연약함과 부족함이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신앙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바로 내가 용서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나를 위해 기

한 몸의 축복

지난 5월 21일(목)은 부부의 날이었습니다. 5월 21일로 정해진 까닭은 가정의 달 5월에 두 사람(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성경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을 볼 때, 아마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20년 전에 처음 주례를 서고, 지금까지 20번 넘게 결혼주례를 서봤습니다. 결혼 주례를 부탁하며 찾아오는 예비부부에게는 몇 주간 결혼예비교육을 조건으로 내겁니다. 몇 년 전에는 직장근무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었던 예비부부와 밤 10시부터 12시까지 4주간 공부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 써서 교육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셔 들인 일입니다. 주님과의 신비한 연합이 이루어져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남녀의 결혼은 그 다음으로 인생의 위대한 일입니다. 두 사람이 만나 한 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말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인류 최초의 사랑고백이며, 자기와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너는 나다”라는 겁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예수님께서도 이

광주정신

5.18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정부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단체들이 기념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수많은 각계 인사들이 광주 망월동을 찾아옵니다. 그만큼 1980년 5월 18일은 광주시민들에게는 아픔의 기억이지만, 광주의 피흘림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루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광주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군사독재 권력에 맞서 민주화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가정을 지키고, 고향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저항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죽음으로 지켜낸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의식 있는 많은 분들이 광주정신을 배우고 가슴에 새기고자 망월동을 찾고 있습니다. 나 역시 1984년 대학에 들어가서 눈물을 흘리며 많이 불렀던 노래가 자주 생각납니다. “5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그런데 우리에게는 배우고 새겨야 할 더 중요한 광주 정신이 있습니다. 바로 양림동의 선교정신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가까운 남구 양림동의 선교사 묘역에는 23명의 선교사님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유진벨, 윌슨, 오웬, 포사이드, 서서평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름의 선교사님들도 있지만, 부인 선교사님들을 비롯해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교사님들이 더 많습니다. 그 곳에 묻힌 분들은 고국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당시에 미개한 조선 땅에 와서 자신들의 소중한 생명을 내어준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시인.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놀이터 교회

매일같이 청년들이 교회를 오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하여 예배로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고, 대부분의 교회사역도 멈춰진 가운데서도 교회는 한산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청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쯤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강의를 들었을 것이고, 그 외의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중간고사를 준비한다든지, 아니면 다양한 캠퍼스 활동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사상초유의 전염병 사태로 학교출석은 연기되고 대부분 온라인수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학교를 가지 않는 청년들이 교회로 오고 있습니다. 그 수가 많아져서 1층 교육관에서, 2층 새가족실에서 둘러앉아서 공부를 합니다. 간혹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면 공부만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젊음이 모였는데, 어찌 공부만 할 수 있겠습니까? 대화도 하고, 놀기도 해야지요! 교회를 제집 드나들듯 하는 청년들이 좋습니다. 그들에게도 역시 교회가 아버지 집이었습니다. 교회가 낯설거나 불편하면 오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있었다면 더 멀어져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에 오가는 청년들의 얼굴은 밝기만 합니다. 교회를 좋아합니다. 청년들 서로 간에 허물없는 관계공동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요즘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교회들마다 청년공동체가 사라지고 있고, 대학생들 중에도 기독교인이 2~3%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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