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오리라!
성탄절 오후 아주 오랜만에 영화구경을 했습니다. 빅토로 위고의 원작 ‘레미제라블’을 뮤지컬로 만든 영화였는데, 보는 내내 감동이었습니다. 특별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리케이트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장면과 함께 울려 퍼진 합창의 마지막 한마디 노래 말이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내일은 오리라!’ 내일이 올 것 같지 않은 절망으로 힘겹게 사는 사람들! 가난으로 굶주리고 부정과 불의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피눈물과 한 맺힌 절규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어나 깃발을 높이 쳐들고 외칩니다. ‘내일은 오리라!’ 그들의 노래 소리는 나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바리케이트 쌓아놓고 처절하게 싸우는 중에 있지만, 희망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이는 현실은 절망적이고, 어두운 터널을 계속해서 달려가야 할 것 같지만, 터널 끝에 펼쳐질 내일의 희망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치열
코로나19와 크리스마스
고 1때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40번째 맞이하는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1981년 가을에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고 추수감사절에 이어 곧바로 성탄절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한 달 전부터 연습을 하고, 24일 성탄전야에 모여 중창, 성극 등 여러 가지 발표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행사가 끝나면 삼삼오오 놀다가 밤 11시가 되면 이제 새벽송을 돌기 위해 준비합니다. 그때의 주된 관심은 어느 조에 편성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잘만하면 그날 밤 맛있는 것도 먹고 선물도 푸짐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을에 따라서 조금씩 대접이 달랐거든요! 그렇게 해서 조별로 흩어져 마을 마을로 다닙니다. 옛날에는 눈이 참 많이 왔던 것 같습니다. 시골 길을 갈 때는 눈길에 무릎까지 빠지면서 다녔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성도님들 집 앞에 도착하면 두 세곡의 찬송을 부르는데요, 서로 화음을 맞춰가면서 천사가 방문한 듯이 정성껏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하룻밤을 지
복음의 능력
그리스도인은 이미 죽었던 자들인데, 복음의 능력으로 새 생명을 얻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과 감격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도 기쁨과 감사로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 사랑으로 사람들을 섬기며,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복음으로 불타는 다음과 같은 외침을 들었습니다. 나 역시 그 정도의 복음의 은혜를 누리고 싶습니다. 나를 저주하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저주하면 저주할수록 나는 더욱 당신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나에게 침을 뱉어 보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숨결을 뿜어낼 것입니다. 나를 때리십시오. 나는 신음소리로 사랑을 고백할 것입니다. 나를 찌르십시오. 나는 사랑한다고 절규할 것입니다. 나를 짐승의 먹이로 던지십시오. 나는 사랑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나를 불태우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열기로 당신의 증오의 가슴을 녹일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도 이 사람을
인생의 시간
요즘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기뻐할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염려가 많아지고, 불안감을 느끼며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생기지 않을까?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암이나 어떤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지 않을까? 등 다양한 문제로 불안해합니다. 이 땅에서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도 그 시간조차 불안에 사로잡혀 사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 인생시계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수명을 80세로 했을 때,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해보면 자신이 어느 시점에 와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만약 나이가 20세이면 오전 6시, 30세이면 아직 오전 9시에 해당되는 인생입니다. 아직은 기회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어떤 실패를 했더라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조금 늦어진 것 같지만 아직 아침시간입니다. 다시 시작하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 40이면 12시 정오입니다.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