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대통령선거
대선을 40일 정도 앞두고 있는 지금, 여야 유력후보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형수 욕설, 대장동 의혹, 무속 논란, 배우자 문제 등 일반 국민들에게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그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당당하게 대통령이 되겠다고 합니다. 누군들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상식 이하의 도덕성, 불공정, 무속과 역술 논란으로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는 이들이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 속상할 뿐입니다. 여야 후보들은 국민을 위한 미래비전이나 정책은 별로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책이라고 하면 그저 돈을 많이 주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에 상대 후보에 대한 의혹들은 계속 부풀리면서 반사이익을 보려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들은 ‘누가 더 좋은가’가 아니라 ‘누가 덜 나쁜가’를 살펴야 되는 상황이다 보니 ‘지금까지 이런 대선은 없었다’고 얘기할 정도입니다.
생명의 에너지를 흘려보내라
그놈들은 틈만 나면 몸을 비벼대며 입을 맞춥니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기들만 좋으면 그만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나란히 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보기가 좋습니다. 그놈들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그런데 그 바로 옆집에 사는 놈들은 서로 사랑할 줄을 모릅니다. 이미 반년 이상을 한집에 살고 있는 부부임에도 서로 섬길 줄도 모르고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만 앞세우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합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싸웁니다. 곁에서 살펴보고 있는 나까지도 늘 불안하게 만듭니다. 오래전에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던 앵무새 한 쌍과 거북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역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면서 그 앵무새들처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도 있고, 아니면 그 거북이 부부처럼 탐욕과 이기심으로 인한 갈등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물
신년 벽두부터 안타까운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습니다. 평택 냉동창고 대형화재로 3명의 소방관이 희생되었습니다. 또한 공군 전투기의 추락으로 29세의 젊은 조종사가 순직했습니다. 민간인의 피해를 막으려고 탈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광주에서는 공사 중이던 고층아파트의 외벽 붕괴로 작업자 6명이 실종되어 아직도 수색 중에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서는 물가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로 인해 유혈사태가 벌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7년째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중동의 예멘에서는 지난 12월 한 달 동안 350명이 넘는 민간인 사상자와 1만 5천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아니 그런 특별한 사건 사고만이 아니라, 이미 전 세계인들을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백신접종 부작용으로 생명을 잃은 분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입니다. 그 유족들의
걸어 다니는 교회
운전을 하면서 길을 갈 때였습니다. 차량 소통이 많은 시간인데, 이상하게도 반대 차선에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안 가서 반대편 차선에 차들이 진행하지 않고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앞에 바로 경찰차가 가고 있었는데, 반대편 선두에 서 있는 차 옆에 세우더니 경적을 울립니다. 무슨 일인가 살펴보았더니 반대편 차선의 운전자가 길 가다 말고 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뒤에 있는 차들은 영문도 모르고 그저 서 있기만 했습니다. 경찰관이 경적을 울려도 계속 잠만 잡니다. 결국 요란스레 사이렌을 울린 다음에야 운전자는 잠에서 깨어나 황급히 떠나갔습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운전하다 말고 길에서 잠이 들었을까 안타까우면서도 그 장면이 퍽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꼭 가야만 하는 길을 가다가 계속 가지 못하고 멈추어 서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피곤하다거나 여러 형편을 핑계 삼으며 주저앉
30년, 주님이 하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1992년 1월 5일(주일)에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고향교회(경기도 평택)를 떠났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순종의 발걸음을 내디뎠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고향교회를 떠나기 전, 1991년 12월 마지막주일 저녁예배 시간에 불렀던 찬송이 생각납니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그렇게 주님과 함께 나의 목회 여정은 시작됐습니다. 서울의 작은 교회에서 중고등부 전도사로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해 2월경에 중고등부 학생들이 나를 교육관으로 불러 앉히더니 집단항의를 했습니다. “한 주간 학교 다니면서 고생하다가 교회 오는데, 왜 맨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