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 사람이라
한 성읍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었습니다. 부자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사서 기르는 새끼 암양 한 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 양은 그에게 딸과 같이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부자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위해 가난한 사람의 암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식사 대접을 했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있던 다윗이 버럭 화를 내며 나단에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런 나쁜 놈이 다 있는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그런 일을 한 놈은 마땅히 죽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의 분노와 정죄는 정당합니다.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지는 못할망정, 하나밖에 없는 것까지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빼앗은 파렴치한 자를 향한 다윗왕의 당연한 분노일 것입니다. 바로 그때 나단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니 다윗의 분노와 정죄는 자신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덮어버리고 살아왔
그 엄마에 그 딸
교회 입구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와 딸이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사이좋게 얘기하며 걸어오는 모녀지간의 모습이 좋아 보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는 빨간색 신호등이 켜져 있는데, 멈춤 없이 도로를 건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단횡단입니다. 아니, 서로 상의도 해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걸 보면 엄마와 딸이 이심전심 통했나 봅니다.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그들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당당하게 건너갑니다. 그리고 저 멀리 유유히 사라져갔습니다. 무단횡단은 교통사고가 우려되는 것만 아니라, 엄연히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와 딸 모두 아무런 문제의식 없는 듯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둘 중 한 사람만이라도 건강한 질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만 기대합니다
“지난 토요일에 여기서 어린이축제를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래요? 우리 아이도 보낼 걸 그랬네요!” 교회 현관 앞에서 불로초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들의 대화 내용입니다. 유초등부 강도사님이 복도에 있다가 우연히 듣게 된 말인데, 마음이 흐뭇했다고 합니다. 봉선동에 믿음의 좋은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 직장을 이직한 예전 동료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행복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동료는 전혀 행복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직장을 이직할 때는 더 좋은 조건으로 옮겨가고, 교회 생활도 즐겁게 하려고 한 일인데, 여전히 행복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집사님은 “나는 행복한데!”라고 했습니다. 교회 생활도 행복하고, 주님 주신 은혜가 감사해서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료를 안타까워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부어지는 교회입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새롭게 신앙생
당신의 자녀는 어떻습니까?
어느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어떤 분이신가?’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분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자이기에 스스로 설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의지해야만 하는 존재인데, 엉뚱한 것에 기대면 인생 망치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고, 우리가 진정 의지할 분이십니다. 형제에게 시간을 들여 체계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잠시 후에 이동하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어떤 분이신가?’ ‘예, 저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구원해주신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분명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복음을 듣고, 깨닫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주님의 은혜입니다. 어린이축제 때, 유치부 아이들에게도 복음딱지로 천국복음을 전했습니다. 집에 가서 자기가 듣고 깨달은 복음을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