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살겠습니다!
예전에 어느 성도님이 아들의 첫돌잔치에 온 축하객들에게 ‘똑바로 살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장면이 기억났습니다. 짧지만 굵고 깊었던 아빠의 멋진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첫돌을 맞은 아들 앞에서, 또 하객들을 증인으로 삼아서 새로운 다짐을 한 것입니다. 그 말대로만 한다면 계속 좋은 남편, 좋은 아빠, 그리고 좋은 성도로 살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각 영역이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가 혼란스럽고, 경제가 더욱 나빠지고 있고, 사회가 불안합니다. 코로나19, 세계 경제 동향, 기후변화 등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지만, 똑바로 살지 못한 사람들이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국민들 앞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똑바로’ 살고자 했다면 좀 더 나은 결과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스스로는 똑바로 살아왔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똑바로 살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면 좋겠습니다. 대부분 한
결코 헛되지 않은 수고
며칠 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저 윤ㅇㅇ입니다. 저 기억하시나요?” 당연히 기억합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제자였습니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질병으로 고통을 겪던 친구였습니다. 매일같이 온몸이 조여오듯이 아팠고, 의자에 앉아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허리통증도 심해서 자주 누워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할 지경이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밤낮으로, 때로는 자정 넘어서 새벽 2~3시경에 찾아올 때도 많았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힘들다고 울었습니다. 그러면 다 들어주고 믿음으로 위로하고 기도를 해줬습니다. 한 2~3년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ㅇㅇ아, 지금 뭐하면서 지내니?” “저 신학 공부하고 목회자가 됐습니다. 목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벌써 40살이 넘었는데, 지금은 몸도 많이 좋아졌고, 내년에 목사안수를 받는다고 합니다. 통화하는 동안 자주 울먹울먹하
값진 명예
1800년대에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갔었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의사로서 장래가 촉망되었고 안정된 삶이 보장되었지만, 기꺼이 버려두고 떠났습니다. 그의 형은 그에게 “너의 인생은 네가 원대로 그 정글의 미개인들 속에 매장되겠지만, 나는 이곳 영국에 머물면서 유명해질 것이다.”라고 하면서 꾸짖었습니다. 그 후에 형은 당대에 알려진 의사가 되었지만, 오늘날 그의 명성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겨우 한 줄로 ‘유명한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형’이라고 언급되어 있는 정도입니다. 반면에 리빙스턴은 많은 분량으로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리빙스턴은 죽으면서 심장은 아프리카에 묻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몸의 나머지는 영국에 돌아와 왕족의 예식으로 장례가 치러지고, 유골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제일 높은 제단 옆에 안치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 명예
특별한 휴가
30년 만의 특별한 휴가였습니다. 처음으로 주일을 포함한 휴가를 보냈고, 주일예배도 아무 긴장감 없이 성도의 자리에서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휴가를 앞두고 한 장로님께서 “목사님, 교회 걱정하시면 믿음이 없는 겁니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믿음을 써서 교회에 대한 염려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교역자들과 장로님들을 비롯한 성도님들이 은혜 중에 든든히 서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교회는 주님이 돌보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는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그분은 더 닮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사역의 현장이 아니라 편안하면서도, 그러나 열흘 간의 휴가 여정 중에도 믿음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매일같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고난받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 제자의 삶, 사명자의 길을 확인하고, 그 길이 우리가 평생 가야 할 길임을 알았습니다. 대한민국 동쪽의 최북단 강원도 고성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