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라면, 기뻐하라! 2

우리가 신앙의 고백으로 많이 가르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에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고 있고, 거기에 대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답을 하고 있습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이 문답을 근거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최고의 기쁨을 누릴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최고의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도 기뻐하지 못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데, 기쁨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전히 내가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하니까 믿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힘을 빼지 못하니 늘 몸은 지치고 마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주변 환경이나 사람이 문제라고 탓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자기 죽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자기는 죽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게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사는 방식도 예수 그리스도이고, 삶의 능력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죽음이 분명하지 않으면 주님을 따라갈 수도 없고, 언제든지 내 욕심, 내 감정, 내 주장이 쌩쌩하게 살아서 기쁨은커녕 염려와 근심, 불만으로 가득 찬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열심을 내게 되면 오히려 주변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만들고, 교회에는 시험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나 역시 목회를 하면서 매일같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임을 선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기뻐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목회현장의 현실이 기쁨을 앗아가는 상황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분을 만나서 죽었던 내가 살아났습니다. 죄를 죄로 알지도 못하고 절망 가운데 방황하던 내가 소망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강단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제자훈련을 하면서 십자가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충만하게 경험합니다. 복음의 은혜를 누리는데, 기뻐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사랑에 빠졌는데, 세상의 형편과 상황이 뭐 그리 대수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