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엄마에 그 딸
교회 입구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와 딸이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사이좋게 얘기하며 걸어오는 모녀지간의 모습이 좋아 보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는 빨간색 신호등이 켜져 있는데, 멈춤 없이 도로를 건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단횡단입니다. 아니, 서로 상의도 해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걸 보면 엄마와 딸이 이심전심 통했나 봅니다.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그들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당당하게 건너갑니다. 그리고 저 멀리 유유히 사라져갔습니다. 무단횡단은 교통사고가 우려되는 것만 아니라, 엄연히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와 딸 모두 아무런 문제의식 없는 듯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둘 중 한 사람만이라도 건강한 질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딸이 그냥 건너려고 하면, 엄마가 ‘그러면 안 돼!’라고 하든지, 그 반대 상황이면 딸이 ‘엄마, 신호 지켜야 돼요!’라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엄마와 딸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렇게 무법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엄마에 그 딸이었습니다.
그 엄마에 그 딸, 똑 닮았다는 말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다보면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대로 배우는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닮아가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유튜브를 통해 볼 때가 있습니다. 설교하는 모습이나 기도회 인도하는 것을 보면 얼굴 모습만이 아니라 목소리, 감정표현, 영적 분위기까지 그 아빠와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를 닮았다는 것이 기분은 좋은데, 혹시 나의 잘못이나 부족함까지 닮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는 그 자녀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을 듣고 배우기보다,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잘 보여줘야 합니다. 잘못 배우고 익숙해진 것을 나중에 커서 고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를 포함한 부모들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문제투성이의 모습입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왕 이렇게 살아온 것 어쩔 수 없지!‘라고 하면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잘 살면 됩니다. 바로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 죽고 주님 사시는 삶‘이면 됩니다. 매일같이 그런 신앙고백으로 살면 예수님 닮은 모습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그의 부모를 통해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긍정적인 의미의 ’그 엄마에 그 딸‘, ’그 아버지에 그 아들‘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또 그런 은혜의 공동체가 분명하다면, ’그 목사에 그 성도‘ ’그 하늘 아버지에 그 자녀‘라고도 불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