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 지불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제자훈련 첫날 정해진 그 시간에 마지막 일곱 번째 집사님이 1층 만나홀의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의 지각도 없이 남자 제자반은 시작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그 집사님은 전남 여수에서 근무를 마치고 달려온 것입니다. 진즉 제자훈련을 받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남자반이 주일이 아닌 목요일 훈련으로 공지되었을 때 많은 주저함이 있었습니다. 주중에 여수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일부러 목요일 저녁에 왔다가 다시 금요일 새벽에 여수로 돌아가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30번 이상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신청을 머뭇거리고 있을 때, 제자훈련을 남편과 동시에 받고 싶다는 아내의 바램을 듣고 기꺼이 훈련 참여를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집사님은 전남 장흥에서 퇴근을 하고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밤늦게 제자훈련을 마치면 또 멀리 나주의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또 어느 집사님은 매일 아침 6시경에는 일터로 나가야 합니다. 제자훈련이 끝나면 밤 10시 30분을 넘기는데, 그 늦은 시간 집에 돌아갔다가 그 다음날 새벽에 출근하는 일은 체력적으로도 몹시 버거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자면 다들 제자훈련에 참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에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예전에 사역했던 교회의 어떤 성도님은 은혜의 자리에 초청할 때마다, 집에 있는 강아지를 돌봐야 한다고 항상 참석을 거절했습니다. 반려견을 돌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늘 그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특별한 은혜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아직 모릅니다. 무작정 떠나라고 하십니다. 일단 떠나면 갈 곳을 보여주신다고 하십니다. 더불어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2~3). 엄청난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믿음으로 갔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갔습니다. 안전, 넉넉한 삶의 권리는 기꺼이 포기하고 말씀 따라서 가는 겁니다. 참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의 순종이라는 대가 지불의 결과로 복을 누리는 자가 되었고, 온 세상의 복덩이가 된 것입니다.
믿음의 삶에는 대가지불이 필요합니다. 당장에는 부담스럽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이 드려질 때, 그는 더 큰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그분의 목적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하늘의 영광을 포기하고 이 땅에 오셨고, 가장 낮은 자리인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고 말씀하시고 죽어가셨는데, 그 의미는 ‘값을 다 치렀다’입니다. 한 분 예수님의 대가 지불을 통해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