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순종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벌써 강산이 세 번 변할 만큼 결혼생활과 사역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1992년 1월 전도사로 목회자의 첫발을 내디뎠고, 그해 6월 결혼을 해서 30년 넘는 세월을 지내왔습니다. 31년의 결혼과 목회를 통해 공통적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사랑과 순종’입니다. 이 ‘사랑과 순종’으로만 가정이 건강해지고, 교회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곧 성경적인 공동체는 사랑과 순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늘 갈등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내들에게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하였고, 남편들에게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엡 5:22~25). 베드로 사도 역시 ‘남편에게 순종하고, 아내를 귀히 여기라’는 똑같은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벧전 3:1~7). 이러한 성경적인 원리를 따르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복한 부부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31년의 결혼생활을 되돌아볼 때, 그것은 더더욱 진리였습니다. 지금도 그 말씀을 적용할 때만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교회 젊은 부부들이 함께 은혜의 자리로 나오는 것을 보면 너무 귀하기만 합니다. 얼마 전에도 ‘어 성경이 읽어지네’ 시간에 젊은 부부가 말씀 앞에 함께 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려주기도 헸습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좀 부족하지만 사랑해주고, 연약하지만 그래도 존경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사랑과 순종’의 부부관계를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2). 부부관계를 말하면서도 진짜 하고 싶은 말씀은 ‘그리스도와 교회’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주셨습니다. ‘대신 죽어주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죄인 된 내 이름으로 죽으시고, 나는 주님의 생명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 엄청난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교회 된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 사랑을 안다면 결코 부담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요21:15~17),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14:21).
지난 세월 동안 여러 교회를 섬기면서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묵상하며, 감사함으로 순종했을 때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순종하지 않거나, 순종하여 일하는 것 같더라도 주님의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 때는 부담만 가중되고, 불평스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더 테레사도 말하기를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주님을 향한 사랑은 순종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 사랑과 믿음의 온전한 표현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