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 성도님들
요즘 우리 교회에는 울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울보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고, 나 역시 자주 목격하고 있습니다. 새가족모임에서, 성장반에서, 목장모임에서, 예배 시간에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어 성경이 읽어지네’ 성경반에서 공부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이 눈물 흘리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예배 시간에도 여러 명의 성도님들이 울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떤 분은 구원받은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울었고, 어떤 분은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자신의 죄인 됨이 가슴에서 절절히 느껴지면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주변에 앉아있던 분들이 놀랄 정도였습니다.
나에게도 울보 아내가 있습니다. 기도만 하고 나면 눈이 벌겋게 퉁퉁 부어 있을 때가 많답니다. 제가 어쩌다 흘리는 눈물에 비해 수백 배, 수천 배는 더 많이 흘릴 겁니다.
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 같은 죄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나 감격해서 웁니다. 때로는 다른 이들의 힘들고 아픈 마음을 내 가슴으로 느끼며 눈물을 흘립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하고 연약함을 인정하며, 어찌할 수 없는 어려운 형편을 고백하며 웁니다. 믿음으로 살려했지만, 또다시 죄를 지은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며 웁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우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 귀하고 사랑스럽고 흐뭇합니다. 그렇다고 남들이 우는 것을 보면 어떤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우는 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기에 흐뭇해하는 것입니다. 울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들이 우는 것이요,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가 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가까이 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과 함께 우리 마음의 더러운 독소가 빠져나갑니다. 울면서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릴 때 십자가의 사랑이 생생하게 경험됩니다. 울면서 사랑의 능력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는 사람들은 심령이 메마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촉촉이 흐르는 위로와 평안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우십시오. 자식을 낳지 못하던 한나가 성전에 나아가 슬피 울 때 하나님이 그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여인들이 주님의 무덤에서 울고 있을 때, 그들은 가장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우셨고, 십자가 앞에 선 연약한 인간의 마음으로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서의 약함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 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