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
서울 마포구에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전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글씨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조선, 그러기에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셔서 이 땅을 위해 헌신하게 하셨습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한 곳만 해도 선교사와 그 가족 145명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또한 광주 양림동에는 22명의 선교사묘원이 있습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목사, 의사, 간호사, 교사, 언론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모국에서의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라로 건너왔습니다. 그들은 당시에만 해도 가난하고 위험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조그만 조선 땅에 복음의 빛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로 왔다가 목숨까지 내어준 것입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고 했던 헐버트 선교사, 그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외국인이었습니다.
루비 켄드릭 선교사는 조선에 온 지 9개월 만에 과로로 인해 25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그녀가 고국에 보낸 편지에는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주어진다면, 그 모든 생명을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읽은 많은 청년들이 선교사로 헌신해 조선으로 왔습니다.
의료선교사로 온 로제타 홀은 남편과 딸을 잃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45년 동안 한국인을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그의 아들 셔우드 홀은 결핵환자를 치료하면서, 크리스마스실을 만들어 계몽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양화진묘원에는 3대에 걸쳐 6명의 가족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언더우드선교사 가정은 4대에 걸쳐 우리나라를 섬겼습니다. 첫 번째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와 연세대학교를 설립했고, 평생 성경번역에 힘썼다고 합니다. 양화진에는 자신과 아내를 비롯한 7명의 가족이 있습니다.
무어선교사는 장티푸스에 죽어가던 백정을 치료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백정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다가 46세의 나이에 장티푸스에 걸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조선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간다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한 알의 밀알로 죽어갔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이 나라가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 땅에 복음이 필요합니다. 선교사님들이 생명 걸고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제 누가 전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