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의 큰 울림


여선교회의 강경기독교유적지 탐방에 함께 다녀왔습니다. 매년 가을 한차례 있는 여선교회 수련회에 언제나 함께 했었는데, 그때라도 우리교회의 보배로운 여성도들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섬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교제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도 동행하길 참 잘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먹고 가니까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전에는 사진사로, 승합차 운전기사로, 율동강사 등으로 섬겼습니다. 목사이니 말씀으로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왕 동행한 김에 한 가지 더 한 것인데 그런 섬김도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엉겁결에 버스 안에서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닙니다. 성도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커피를 타주다가 아예 가고 오는 길을 책임져버렸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하고, 섬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길 잘한 것 같습니다. 아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가 보기에는 다들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김목사가 더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그들과 한마음으로 주님을 노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경 가는 김목사는 강경젓갈시장에는 하등의 관심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유적지 탐방에도 그리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우리교회 여선교회 성도들과 함께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강경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다시 한 번 순교신앙을 마음에 새기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강경으로 들어가면서 가졌던 첫 느낌은 작은 시골마을에 어려 있는 특별한 영적기운이었습니다. 유독 교회가 눈에 많이 띄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먼저 방문한 병촌교회는 6.25전쟁 당시 66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죽어갔습니다. 심지어 공산군은 만삭된 여인의 목에 죽창을 갖다 대고 ‘예수님을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했지만, 기꺼이 순교를 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 방문한 강경성결교회 마당에는 ‘최초 신사참배거부 선도기념비’가 있었습니다. 바로그 교회가 일제시대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거부운동의 진원지였습니다. 1924년 10월 강경공립보통학교에서 처음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일이 있었는데, 김복희 교사와 학생 62명이 그 주역이었습니다. 그 중에 교사와 학생 57명이 강경교회 성도들이었는데, 그들은 면직과 퇴학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절하지 않았습니다. 강경교회 백신영 전도사로부터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은 교회 주일학교 학생들이 바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위기에 빠진 나라와 민족을 어떻게 선도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병촌교회 부목사님의 간절하게 부탁하는 마지막 말이 마음에 크게 울리고 있습니다. “순교의 신앙을 다음세대에게 전수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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