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이슬

금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교회 잔디마당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잔디 위에 맺힌 아침이슬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습니다. 잔디마당이 빛을 내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반짝반짝 빛나는 영롱한 아침이슬이 마치 봉선중앙교회 성도님들처럼 생각되었습니다.
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를 많이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캠퍼스에서, 거리에서, 하숙집에서, 배낭을 메고 조국의 산천을 걸으면서 불렀습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 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당시의 이 노래는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곡이었습니다.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고민하고 아파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용기를 얻었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슬을 축복과 번영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슬은 생명입니다. 이슬은 추수기에 열매의 풍성함을 가져다줍니다. 아침이슬은 약하고 쓸모없는 것 같이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신선하면서도 생명력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반드시 필요하고 너무나 소중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아침이슬입니다. 복음의 생명력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예수생명으로 거듭났는데, 그것이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도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은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슬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무수한 젊은이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연약하고 힘없는 청년들에 불과한 것 같지만, 이들은 주님의 비전이요 희망입니다. 이 시대의 심장이요 교회와 사회, 민족의 꽃입니다. 저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그리고 세계역사를 통해 볼 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젊은이들이 일어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 사막에 풍성한 꽃이 피고, 광야가 옥토로 변합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17세의 젊은 요셉을 통해 이집트 장군의 집이 생기를 얻었고, 청년요셉을 통해 한 나라가 재앙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품고 분연히 일어선 청년 비느하스는 타락한 이스라엘을 멸망의 위기에서 건져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요셉이 되길 원하고, 비느하스가 되길 원합니다. 지금은 비록 ‘삼포세대’라고 불릴 정도로 현실의 높은 벽 앞에 놓여있지만, 이들이 작은 복음의 불씨가 되어 광주와 민족, 열방에 예수바람, 예수혁명을 일으키고, 부흥의 불길의 도화선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청소년)들이 통일을 준비하여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통일시대의 주역이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