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과 서번트리더십

요즘 여기저기에서 ‘갑질’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육군대장 부부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의혹이 온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공관병에게 폭언을 하고, 전자 팔찌를 채우는 등 비인격적으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이 ‘갑질’논란은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라, 그동안 사회 각 영역에서 끊임없이 제기됐던 문제였습니다. 사실 갑질 문화는 양반, 상놈으로 구분 짓던 옛날부터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힌 적폐입니다.
‘갑질’이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자신보다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말합니다. 자신의 지위 또는 권력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권리를 짓밟는 갑질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고 눈물 흘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기독교인이고, 교회에서의 직분이 장로, 권사라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본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그들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분명하고 그 사실을 인식하고 살았다면 아무 거리낌도 없이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삶 전체가 바꿔지기 때문입니다. 적폐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갑질은 그리스도인의 삶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지도자와는 달리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은 섬김을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아래에 무릎 꿇고서 일일이 그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시면서 완전한 섬김을 실천하셨습니다.
곧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것은 ‘갑질’이 아니라 ‘서번트리더십(Servant Leadership)’입니다.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낮아져서 종처럼 섬기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교회에서 장로, 권사라고 하면 그동안 수없이 듣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 이전에 거쳤을 직분인 집사(deacon)는 ‘섬기는 자, 시중드는 자’라는 의미가 있는데, 그것을 잘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갑질 인격으로 산다면 예수님의 죽음에 자신을 넘겨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나는 죽었습니다’라고 자기 죽음을 선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갑질’이 아니라, ‘섬김’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