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사람 리즈 하월즈의 중보기도’를 읽고

하나님께서는 리즈 한 사람을 중보기도자로 만드시기 위해 철저히 다루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그가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것들을 남김없이 처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듭난 사람이었지만, 자기 자아의 죽음을 철저히 인정할 뿐만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실천하기 어려운 성령님의 명령까지 완전하게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리즈는 ‘그것은 위대한 죽음이었다’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상한 몰골로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금식을 해야 하고, 많은 시간 심지어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을 위해 6개월을 기도하는 등 자기로서는 할 수 없는 그것을 성령님께 순종하여 실천한 것입니다. 중보기도자로 선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생각했습니다. 모세에 대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의 중보적 삶에 대해 설교는 했어도 내가 그들처럼 살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적당히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결코 중보기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부담으로 오기도 하였습니다. 리즈 역시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잠깐씩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나는 더더욱 순종하기가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부르심이라면 결국은 순종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 죽고 주님 사신다고 고백은 하는데, 그 고백의 실제는 완전한 순종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이 보는 눈에 대해 죽는 것이고, 세상에서 누리고자 하는 것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 고백이 실제라면 내 안에는 주님께서 살고 계십니다. 그 분의 삶은 잃어버린 세상의 영혼을 향한 사랑과 희생의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 역시 동일한 삶이어야 합니다. 리즈는 주님의 완전한 생명으로 영혼을 사랑하였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시간, 물질, 마음을 다 쏟아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회심을 위해, 그의 병 고침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의 생각에 따라서가 아닌, 주님께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가 바로 중보기도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적용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고, 생각나게 하시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리즈의 기도와는 질적으로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에게 주님의 마음이 더 많이 부어지길 기도합니다. 이제까지 목회자로서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를 해왔지만, 간절함보다는 의례적인 기도가 더 많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주님께 묻고자 합니다. 주님이 보여주시는 영혼을 위해 주님의 생명으로 기도하려 합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어찌할 수 없지만, 주님이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리즈를 더 낮아지게 하시고, 골방에서 기도하게 주님은 나에게도 골방기도에 전심을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부터 부흥은 시작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오직 성령에 사로잡힌 중보기도자의 기도를 통해 오늘도 당신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일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