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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새겨진 신앙


“알았어요! 나도 안다고요!” 많이 들어봤던 말 아닙니까?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많이 해왔던 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 앎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습관을 따라 사는 것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기상을 한 후에 양치질을 하고 세면을 하는 일은 전혀 고민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타서 마십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 전원을 켜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바로 몸에 밴 습관이 그의 삶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우리는 습관에 이끌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몸에 배었다는 것은, 다른 말로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척교회 시절 젊은 남자 성도가 있었는데, 주일예배 후에 점심식사로 국수를 먹는 날이면 영락없이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교회에 있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그날만큼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가난한 어린 시절 국수를 질리도록 먹어서 국수만 보면 불편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있었던 우리 교회 어떤 사역자는 복숭아만 눈에 띠어도 몸이 가려워서 힘들어했습니다. 심지어는 복숭아라는 말만 들어도, 복숭아가 근처에만 있어도 가려워했습니다. 어렸을 때 복숭아를 먹고 심하게 체하면서 복숭아 알레르기가 생긴 것입니다. ‘트라우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을 통해 받은 심리적 상처라고 할 수 있는데,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몸이 그것을 기억하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몸이 기억하고 있으면 쉽게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게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나는 1년 내내 탁구를 치지 않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예전처럼 탁구를 칠 수 있습니다. 수년 동안 자전거를 타보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어렵지 않게 탈 수 있습니다. 내 몸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을 몸으로 기억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머리로 배우고 지식으로만 남는다면 신앙생활의 유익함은 없습니다. 내가 청년시절 섬겼던 교회의 어른들이나 지금도 연세 드신 신앙의 선배님들은 변함없는 신앙생활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우리만큼 성경적, 교리적인 지식은 많지 않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를 지켰고, 꾸준히 교회를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시간이 되면 성경책을 들고 교회로 갑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우선적으로 헌신합니다. 바로 몸에 새겨진 신앙을 따라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분들이 은혜를 누리는 것이고, 그분들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나라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몸이 기억하지 않는 신앙은 언제 돌아설지 모릅니다. 열정이 식어지면 신앙생활도 시들시들해집니다. 어느 순간 믿음 없는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알긴 알지만, 대체적으로 몸을 따라 가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꾸준한 기도와 말씀생활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좋은 습관은 반복적인 연습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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